Questions are weapons. Thoughts are shields.

“질문은 무기가 되고, 생각은 방패가 된다.”

전쟁 9

남북전쟁 ep.2 전쟁의 포문을 열다 – 포트섬터 포격 사건

긴장 속의 요새, 포트섬터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은 깊은 균열에 빠져들었다.남부 주들은 노예제와 주권 문제를 둘러싸고 불만을 쌓아왔고, 결국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탈퇴를 선언했다.남부 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이 결성되면서, 연방정부의 시설들을 두고 긴장이 높아졌다.찰스턴 항에 위치한 포트섬터(Fort Sumter) 는 그 상징이었다.이 요새는 연방정부 소속이었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이를 자신들의 영토라 주장했다.양측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상황. 포트섬터는 마치 폭풍전야의 한가운데 놓인 불씨였다.링컨과 남부의 충돌링컨은 전쟁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연방 소속의 요새와 자산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한편, 남부연합은 포트섬터..

태평양 ep.5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의 그림자 아래

인류 최초의 핵폭탄, 그리고 끝나지 않은 질문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발의 핵폭탄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났을지 몰라도, 핵이 남긴 그림자는 지금도 인류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군부의 극단적 선택과 천황의 미온적 대응은 더 큰 비극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핵폭탄 사용의 배경 – 전쟁을 끝내기 위한 선택?도쿄 대공습 이후에도 일본은 완강하게 항복을 거부했습니다. 미국은 태평양 전역에서 막대한 병력 손실을 감수하며 점령을 계속했고, 본토 상륙작전(다운폴 작전) 시 수백만의 사상자가 예상되던 상황이었습니다.이때 미국은 새로운 ‘결정적 무기’로서 핵무기 투하를 선택합니다. 실제..

태평양 ep.4 도쿄 대공습 – 불타는 밤, 전쟁이 민간을 향하다

1945년 3월 10일, 도쿄는 타오르고 있었다미드웨이 해전 이후 전황은 서서히 미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미국은 일본 본토를 향한 전면 공습을 단행합니다. 그 시작이자 절정이 된 도쿄 대공습은 단 하루 밤 사이 1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한 참혹한 사건이었습니다. 전쟁은 이제 군사뿐 아니라 도시 전체를 향한 것이 되어갑니다.🇺🇸 전선은 바다에서 하늘로미드웨이 해전 이후 미국은 섬 점령을 통해 일본 본토에 접근해갔습니다. 사이판, 티니안, 괌 등 마리아나 제도를 확보한 미군은 장거리 폭격기 B-29 슈퍼포트리스를 배치하여 일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합니다. 전략적 요충지를 넘어선 이 제도들은 이제 공습의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야간 폭격, 도시 전체를..

태평양 ep.3 미드웨이 해전 – 항공모함이 만든 승리의 파도

진주만의 복수, 바다 위의 운명을 뒤바꾸다1942년 6월, 태평양 한가운데서 펼쳐진 미드웨이 해전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일본 해군의 거침없는 기세에 제동을 걸고, 제2차 세계대전 해전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전략은 왜 실패했을까요? 그리고 니미츠 제독은 어떻게 승부를 뒤집었을까요?🎯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승부수, 미드웨이 작전진주만 공습의 주도자였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제독은 미국 태평양 함대를 뿌리 뽑기 위해 미드웨이 섬 점령 작전을 구상했습니다.그는 진주만에서 살아남은 미 항공모함 전력을 유인하여 기습적으로 섬멸함으로써, 태평양 전역의 해상 패권을 완전히 확보하고자 했습니다.하지만 이 작전에는 중대한 전제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바로 ‘..

태평양 ep.2 둘리틀 공습 – 본토를 향한 첫 복수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폭격기, 일본을 뒤흔들다진주만 공습으로 깊은 충격에 빠졌던 미국. 그러나 불과 4개월 뒤, B-25 폭격기가 일본 도쿄를 향해 날아오릅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이 작전은 어떻게 실현되었고, 전쟁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요?🎯 작전의 배경 – 미국의 심리적 반격1942년 초, 미국은 진주만 공습 이후 전쟁 분위기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국민의 사기를 높이고, 일본에게도 ‘미국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었죠.이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 본토를 직접 공습하는 ‘모험적 작전’**을 승인합니다.이 작전은 지미 둘리틀(James Doolittle) 중령이 이끄는 특수부대에 의해 수행되며, 훗날 그의 이름을 따 **‘둘리틀 공습’**으로 불리게 됩니다..

태평양 ep.1 전쟁의 판도를 바꾼 날, 진주만 공습

거함거포주의의 종말과 항공모함 시대의 시작1941년 12월 7일, 일본이 감행한 진주만 기습공습은 단순한 군사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한 전략적 응답이자, 세계 해군전략의 대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기대했던 ‘협상’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은 전시경제 체제로 전환하며 총력전의 시대로 진입합니다.🇯🇵 일본, 왜 진주만을 공격했는가?제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던 1941년, 일본은 동남아시아로의 팽창을 계속하며 자원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석유, 철강, 고무 등의 수출 금지 조치를 통해 일본을 압박했고, 이는 일본에게 사실상 ‘선전포고 없는 봉쇄’였습니다.외교적 해법이 요원해진 상황 속에서, 일본은 미국 태평양 함대의 무력화를 통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전장의 또 다른 무기, 언론 – 보도인가 선동인가?

전쟁은 총과 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현대 전쟁에서 언론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이며, 전장의 판도를 뒤집는 조력자 또는 파괴자가 되기도 한다.사실을 전달해야 할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명분도, 국민의 감정도, 결과마저도 달라진다.“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다.”– Aeschylus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 언론의 순기능 – 고발과 기록, 그리고 여론의 감시자언론은 전쟁 속에서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통로다.민간인 학살, 난민 사태, 전쟁 범죄 등이 국제 사회의 눈에 띄고 개입으로 이어지게 되는 출발점은 언제나 언론이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1995년 유고 내전 중 스레브레니차 학살이다.세르비아계 민병대가 보스니아 무슬림 남성 8,000여 명을 집단 학살한 이 사건은 ..

언론이 만든 패배 – 베트남전, 구정공세 그리고 우리 인식의 허상

🌐 도입우리는 세상을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다.하지만 그 창이 늘 맑고 투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1968년 베트남.설 명절 ‘구정(Tet)’에 벌어진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동시다발적 공세, 이른바 **‘구정공세’(Tet Offensive)**는 미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언론은 일제히 이를 대서특필하며 전쟁의 전환점으로 보도했고, 국민들은 전쟁의 패배를 직감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투 자체에서는 미군이 승리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우리는 이 전쟁을 ‘패배’로 기억하게 된 걸까?⚔️ 군사적 실상 vs. 보도된 현실📌 게릴라전의 상식을 깬 ‘무모한 총공세’베트콩은 본래 게릴라전에 특화된 조직이다.하지만 구정공세는 게릴라 조직답지 않은 전략이었다. 수십 개 도시를 동..

해가 지지 않던 나라, 영국의 몰락과 세계대전의 교훈

🌍 해가 지지 않던 나라, 영국‘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단연 영국일 것이다.이 표현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었다.영국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 걸쳐 식민지를 보유한 초강대국이었다.영국은 단순히 영토를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식민지와 본국 간의 순환 경제 체제를 구축하며영연방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 경제 시스템처럼 움직이도록 설계했다.빅토리아 여왕 시기, 영국은 ‘제국’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국가였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오늘날 우리는 알고 있다.그 영광스러웠던 제국이 ‘영국병’이라 불리는 구조적 경제 문제를 겪고 있고,‘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타이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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