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s are weapons. Thoughts are shields.

“질문은 무기가 되고, 생각은 방패가 된다.”

에도막부말기 9

막부말기 ep.9 전쟁의 유산 –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재탄생

이 전쟁은 단지 권력을 바꾼 사건이 아니다.그것은 ‘나라’의 모양을 새로 그리고,그 위에 존재할 사람들의 신분과 역할까지 다시 쓴체제의 해체이자 재조립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근대화’라 부를 수 있을까?메이지 유신은 정말 ‘국민’을 위한 혁명이었을까?1. 무엇이 무너졌는가 – 전쟁이 지운 풍경📍 1869년, 에조 공화국의 붕괴로 보신전쟁은 공식 종료된다.그러나 이 전쟁은 성과 무기만 파괴한 것이 아니었다.막번체제: 전국 260개 번의 자치 질서 → 폐번치현사무라이 계급: ‘무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신분이 된다신분 사회: 사민평등 선언 → 실제론 겉모습만 평등종교와 도덕: 불교, 유학이 국가 운영의 중심에서 배제정치 질서: 쇼군 중심 → 천황 중심 → 다시 관료 중심으로사라진 건 권력만이 ..

막부말기 ep.8 북으로 가는 전쟁 – 아이즈 전투와 에조의 꿈

⏱️ [요약 / 역사형]에도는 피하지 않았지만,북쪽은 피할 수 없었다.보신전쟁의 마지막 불꽃은 도호쿠와 훗카이도에서 타올랐고,사무라이들은 그곳에서 끝까지 싸웠다.심지어 그들은 바다 건너 일본 최초의 공화국을 세우기까지 했다.그러나 시대는,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1. 에도가 끝난 자리, 북방 무사들이 일어서다📍 1868년 4월,에도는 무혈 개성으로 신정부에 항복한다.그러나 아이즈 번, 센다이 번, 쇼나이 번 등 도호쿠 지역 번들은그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들은 도쿠가와에 대한 충성을 명분으로**“오우에쓰 열번 동맹(奥羽越列藩同盟)”**을 결성한다.“우리는 반란자가 아니다.우리는 천황을 지키고자 했던 자들이다.”🛡 왜 아이즈는 싸워야 했는가?아이즈 번은 단순한 지방 세력이 아니었다.도쿠가와 친족 ..

막부말기 ep.7 보신전쟁 – 전장에 선 두 개의 일본

⏱️ [요약 / 역사형]1868년 1월, 왕정복고는 칙령으로 끝나지 않았다.말과 문서의 시간이 지나고,이제는 총성과 군기로 말하는 시대.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몰락을 거부했고,신정부군은 ‘천황의 이름으로’ 칼을 들었다.이것은 한 체제의 사망선고이자,새로운 국가의 출혈성 탄생이었다.1. 전쟁은 선언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되었다📍 1868년 1월 3일,왕정복고의 대호령이 선포되자 도쿠가와 요시노부는정권을 넘긴 척하면서도 에도로 가지 않고 오사카 성에 주둔한다.그는 마지막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었고,신정부는 그 망설임을 반란의 조짐으로 간주한다.신정부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해,도쿠가와 토벌 작전을 공식화한다.2. 토바·후시미 전투 – 내전의 첫 포성이 울리다📍 1868년 1월 27일,눈 내리는 ..

막부말기 ep.6 사쓰마·조슈 동맹과 왕정복고의 대호령

⏱️ [요약 / 역사형]칼을 쥐고 평행선을 달리던 두 세력이, 마침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인다.그러나 이 동맹은 결코 감정의 화해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정권을 잡기 위한 이해와 전략, 그리고 무장과 명분의 교환.그 중심에 사카모토 료마가 있었다.이제 일본은 과거의 적들이 만든 미래로 나아간다.1. 적이었던 자들 – 사쓰마와 조슈, 감정을 넘어서사쓰마와 조슈.표면적으로는 반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그 이면엔 깊은 상호 불신과 감정적 앙금이 존재했다.조슈는 1864년 금문의 변에서 교토 장악을 시도하다,사쓰마·아이즈·신선조에 의해 격퇴됨이 사건으로 조슈는 “급진 반역자”,사쓰마는 **“기회주의적 배신자”**라는 낙인이 각인됨몇 년 전만 해도, 이 둘이 손을 잡는 건 정치적 상상조차 불가능했다.2. 현실이 결..

막부말기 ep.5 사쓰마와 조슈 – 반幕을 향한 평행선

⏱️ [요약 / 역사형]신선조의 검이 피를 그은 밤, 조슈는 무너졌고 사쓰마는 침묵했다.그러나 두 세력은 모두 살아남기 위한 결단을 내리며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그들은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이미 같은 적을 향하고 있었다.1. 조슈 – 꺾이지 않는 검, 다시 벼려지다📍 1864년 7월, 이케다야 사건 이후 조슈는 교토에서 축출되고,막부는 이를 빌미로 조슈를 반역 번으로 간주한다.⚔️ 조슈, 칼을 들고 교토로 돌아오다 – 금문의 변같은 해 7월 19일, 조슈 무사들은 교토 조정 장악을 위한 무력 시도 감행→ 사쓰마·아이즈·신선조 연합군에 의해 격퇴, 교토 대화재 발생결과: 정치적 명분 상실 + 막부의 정벌 대상 확정📍 제1차 조슈 정벌 (1864)막부군 공세에 밀려 패퇴, 번주 퇴진, 정치 구조 개편그..

막부말기 ep.4 신선조의 출현 – 막부의 마지막 방패

⏱️ [요약 / 역사형]사쓰마와 조슈가 반幕의 깃발을 들었다면,막부는 신선조라는 마지막 칼날을 꺼내든다.그들은 오직 ‘질서’와 ‘충성’을 위해 싸웠고,교토의 밤은 그들의 피와 검으로 물들어갔다.이제 말이 아닌 칼로 싸우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1. 혼란의 교토, 칼이 먼저 움직인 도시1860년대 중반의 교토는정치의 중심이 아니라, 암살과 습격의 도시였다.존황양이파 무사들이 밤마다 거리를 누비고조슈, 도사 등 반幕 세력이 조정을 장악하려 했다막부는 이 질서를 제압할 새로운 무장 조직을 필요로 했다그리고 그때 등장한 이들이 바로,신선조(新選組) – ‘새롭게 선택된 자들’2. 신선조 – 무사 아닌 무사들의 집단신선조는 정규 무사가 아니었다.하급 무사, 농민 출신, 검술 도장 출신의 무력가들로 구성되었다..

막부말기 ep.3 존황양이의 불꽃 – 반幕 세력의 태동

⏱️ [요약 / 역사형]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키자는 외침,그 속에서 사무라이들은 분열하고 무장을 시작한다.존황양이라는 이름 아래 무사들은 천황의 군대를 자처했고,이념은 곧 칼이 되어 막부의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이것은 사상의 전파가 아니라, 내전을 향한 군사화된 열망의 시작이었다.1. “천황을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치자” – 구호인가 선언인가?📍 1850년대 후반, 일본 전국에 울려 퍼진 한 구호:“존황양이(尊皇攘夷)” –천황을 받들고, 오랑캐(서양 세력)를 물리치자 이 구호는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니었다.그것은 막부 체제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정치의 중심은 쇼군이 아니라 천황이다”라는 권위 이동의 선언이었다.📍 이 사상은 앞선 편(ep.2)에서 설명한 **미토학파(水戸学)**의..

막부말기 ep.2 개국과 번체제의 위기 – 에도 질서가 흔들린다

⏱️ [요약 / 역사형]흑선이 다녀간 뒤, 일본은 이미 과거의 일본이 아니었다.막부는 개항을 수용했지만, 그 순간부터 ‘막번체제’는 무너지고 있었다.그 틈을 타, 지방 번들은 무기를 들 준비를 시작한다.이제 중앙 권력은 도전을 받기 시작했고,전쟁은 더 이상 ‘가정’이 아니다.1. 막번체제 – 오래된 질서의 한계에도 시대를 유지해온 정치 시스템은 **막번체제(幕藩体制)**였다.‘막(幕)’은 도쿠가와 막부‘번(藩)’은 전국 각지의 다이묘들이 다스리는 자치 지역표면상으론 막부 중심의 피라미드였지만,실제로는 각 번이 군사력, 세입, 정책 집행을 독립적으로 운용했다.이 체제는 외부 위협이 없을 때만 작동하는 균형의 허상이었다.게다가 번마다 처지와 속성이 달랐다.조슈번은 세키가하라 패전으로 막대한 영지를 박탈당한 ..

막부말기 ep.1 흑선이 도착한 날 – 페리 제독과 일본의 긴 잠

⏱️ [요약 / 역사형]1853년, 검은 증기선을 타고 온 한 사내가 일본을 뒤흔든다.그의 이름은 매튜 페리.그의 등장은 250년 평화를 지켜온 에도 막부의 시간마저 멈추게 했다.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외교 충돌이 아니었다.그날, 일본은 내전이라는 이름의 불길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1. 일본은 왜 잠들어 있었나?에도 시대(1603~1868)의 일본은 평화로웠다.정확히 말하면, 고립 속에서 유지된 안정을 ‘평화’로 착각한 시대였다.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립한 막번체제(幕藩体制)각 번에 자치권을 주되, 중앙권력은 막부가 장악외세 유입을 철저히 차단한 쇄국 정책외국 교류는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청나라에 한정기독교 전면 금지, 서양 문물 통제무사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았고,그들의 삶은 ‘충’과 ‘안정’이라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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