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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문화 비평/동아시아사

막부말기 ep.7 보신전쟁 – 전장에 선 두 개의 일본

arrowmaster 2025. 5.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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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 역사형]
1868년 1월, 왕정복고는 칙령으로 끝나지 않았다.
말과 문서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총성과 군기로 말하는 시대.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몰락을 거부했고,
신정부군은 ‘천황의 이름으로’ 칼을 들었다.
이것은 한 체제의 사망선고이자,
새로운 국가의 출혈성 탄생이었다.


1. 전쟁은 선언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되었다

📍 1868년 1월 3일,
왕정복고의 대호령이 선포되자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정권을 넘긴 척하면서도 에도로 가지 않고 오사카 성에 주둔한다.

그는 마지막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었고,
신정부는 그 망설임을 반란의 조짐으로 간주한다.

신정부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도쿠가와 토벌 작전을 공식화한다.


2. 토바·후시미 전투 – 내전의 첫 포성이 울리다

📍 1868년 1월 27일,
눈 내리는 교토 남부, 토바와 후시미 지역.
이날 일본은 한 나라 안에 두 나라가 존재함을 총으로 증명한다.


🌫 전야 – 군기 하나가 만든 전선의 균열

막부군은 병력 15,000명으로 신정부군의 세 배 가까운 수치를 자랑했지만,
진정한 전세는 **전투 전날 신정부 진영에 도착한 ‘한 장의 깃발’**에서 갈렸다.

금장기(錦の御旗) – 천황이 내린 깃발.
이 깃발이 나부낀 순간, 신정부군은 “황군”이 되었고,
막부군은 “역적”의 칼을 든 자가 되었다.

 

병사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총보다 빠르게 그들을 꿰뚫었다.


⚔ 전장 전개 – 토바에서 후시미까지, 두 갈래 전투

🧭 토바 전선 – 포성 속 심리전

신정부군은 협곡과 강변지형을 이용해 포병대 진지를 세우고 있었다.
막부군은 전통식 진형을 펼치며 전면 돌파를 시도했지만,
스나이더 소총서양식 곡사포토바의 안개를 찢으며 병력을 갈랐다.

“쾅—!”
포성이 아닌, 신념의 균열음이 전장을 먼저 울렸다.

 

기습 포격과 지형 통제로 인해 일부 막부 부대는 아예 접근도 못한 채 무너졌고,
금장기를 본 일부 병력은 전투 자체를 거부했다.

📷 본 블로그에 사용되는 이미지는 운영자가 직접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하여 제작합니다. Images used in this blog are created by the author using AI-based image generation tools.


🧭 후시미 전선 – 성과 골목의 혈투

동시각, 후시미 일대에서는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신정부군은 후시미 성 인근 고지대를 선점, 진입로를 봉쇄했다.

막부군은 저지당하며 지휘관 간 명령 충돌,
혼란한 와중에 우회로 없는 진격은 스스로의 무덤이 되었다.

골목마다 낯선 총성이 울렸고,
칼보다 먼저 스스로 무너진 건 병사들의 싸움에 대한 확신이었다.


📉 결과 – 숫자는 의미 없었다

  • 막부군 지휘 체계 붕괴
  • 대규모 이탈과 탈영
  • 오사카 성으로 패주, 전황 주도권 완전 상실

병력은 많았지만,
황군의 이름은 그 두려움보다 컸다.


3. 오사카 성 철수 – 지도자의 부재, 체제의 붕괴

📍 1868년 1월 30일,
요시노부는 오사카 성을 아무 설명 없이 떠나 에도로 철수한다.
군도, 장교도, 신하도 남긴 채.

남겨진 군은 지휘 없이 방황했고,
그날 밤 오사카 성의 불빛은 꺼졌다.

“전쟁은 계속되지만, 쇼군은 없다.”
그것은 도쿠가와 체제의 정치적·군사적 동시 붕괴였다.


4. 일본을 가른 전장들 – 전국으로 번지는 내전

📌 우쓰노미야 전투

  • 관동 진입한 신정부군
  • 도쿠가와 잔존 번들의 저항
  • 그러나 무기·사기·속도에서 압도적 우위

📌 아이즈 전투

  • 아이즈 번은 충의를 명분으로 끝까지 항전
  • 백호대(白虎隊) – 10대 후반 무사 소년들의 집단 자결
  • 성 함락 후 번 해체, 도호쿠 질서 붕괴

📌 하코다테 전투

  • 에노모토 다케아키, 훗카이도에서 에조 공화국 수립
  • 히지카타 도시조 등 신선조 잔당과 결집
  • 1869년 5월 신정부군 총공세 → 공화국 붕괴, 전쟁 종결

5. 인물로 본 보신전쟁 – 누가 전장을 설계했는가

🟥 사이고 다카모리

  • 전장을 총지휘하며 천황 정통성 + 군사 속도 전략 추진
  • 에도 무혈 개성과 전면 침공을 동시에 지휘

🟥 에노모토 다케아키

  • 막부 해군 총사령관, 이후 에조 공화국 총재
  • 유럽 유학파, 입헌주의 시도
  • 패전 후에도 메이지 정부의 해군 대신으로 중용됨

🟥 카쓰 가이슈

  • 에도 무혈 항복의 협상가
  • 민간 피해 최소화, 권력 이양의 조율자

이 전쟁은 정치가 시작했고,
군대가 그 구조를 설계했으며,
마지막은 이념이 아닌 병력이 끝냈다.


⚔ 마무리 – 사무라이의 질서는, 이제 끝났다

보신전쟁은 단지 정권 다툼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질서의 총체적 재설계였다.

  • 천황은 상징으로 격상되었고
  • 사무라이는 계급이 아닌 병사가 되었으며
  • 무력은 정당성의 도구가 되었다

도쿠가와가 사라진 자리에,
메이지는 칼과 피로 그려졌다.


⏳ 다음 편 예고

📘 ep.8 – 북으로 가는 전쟁: 아이즈 전투와 에조의 꿈
에도는 피하지 않았지만, 북쪽은 피할 수 없었다.
도호쿠 연합과 아이즈 번은
신정부군에 맞서 끝까지 싸우고자 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희망은, 바다 건너 훗카이도에 세워진 공화국이었다.
다음 편에선 내전의 마지막 불꽃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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