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 역사형]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키자는 외침,
그 속에서 사무라이들은 분열하고 무장을 시작한다.
존황양이라는 이름 아래 무사들은 천황의 군대를 자처했고,
이념은 곧 칼이 되어 막부의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것은 사상의 전파가 아니라, 내전을 향한 군사화된 열망의 시작이었다.
1. “천황을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치자” – 구호인가 선언인가?
📍 1850년대 후반, 일본 전국에 울려 퍼진 한 구호:
“존황양이(尊皇攘夷)” –
천황을 받들고, 오랑캐(서양 세력)를 물리치자
이 구호는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막부 체제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정치의 중심은 쇼군이 아니라 천황이다”라는 권위 이동의 선언이었다.
📍 이 사상은 앞선 편(ep.2)에서 설명한 **미토학파(水戸学)**의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 철학은 조슈 번에서 현실의 무력 행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2. 조슈번 – 사상에서 무장으로 가장 먼저 움직이다
조슈는 단순한 이상주의 번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이념을 현실의 무기로 바꾼 번이었다.
- 요시다 쇼인 등 사상가 출신들이 사무라이 계층 내부를 교육
- 서양식 무기 도입, 사설 훈련장 설립
- 민병대 형식의 자위대 조직 → 이후 군제 개혁의 전초
“우리는 말이 아닌 총으로, 뜻을 이룰 것이다.”
– 조슈 무사 내부 문건 중
이 시기 조슈는 사상과 군사력의 통합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집단이었다.
3. 도사번과 사쓰마번 – 다른 방식의 반幕
📍 도사번
- 하급 무사 중심의 이념 기반
- 사카모토 료마 등 비폭력·개혁 구상 중심 인물 등장
- 존황양이보단 개혁과 중재 역할에 집중
📍 사쓰마번
- 외견상 중립, 실상은 실리주의
- 무기 수입과 서양식 군제 도입
- '양이'보다 ‘현실적 개화’를 선택
→ 같은 ‘반막’이라도 조슈는 급진 실천, 사쓰마는 신중 실리, 도사는 이상 중재의 길을 걸었다.
4. 무사의 분열 – 누구를 위해 검을 드는가?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들은 250년 전쟁 없는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다시 칼을 갈기 시작했다.
- 일부는 막부에 충성하며 신선조에 합류
- 일부는 존황양이파에 따라 자발적 민병 조직 결성
- 조슈·도사·사쓰마에서 무장단체와 자치 방위조직 등장
무사라는 집단 내부에서 충성의 기준이 ‘쇼군’에서 ‘이념’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5. 피 없이 혁명은 없다 – 사상의 군사화
존황양이는 철학이 아니라,
이제 전쟁의 명분이자 동원 구호가 되었다.
- 교토 조정에 영향력 행사 → 정치 권위 확보 시도
- 일부 번, 직접 교토 진입 계획 수립
- 신정부 구상 문건이 번 내부에서 논의되기 시작
사상은 곧 정치가 되었고,
정치는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구조적 내전’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 마무리 – 사무라이들은 깃발을 바꿨고, 검은 칼집에서 빠졌다
존황양이는 단지 외세 배척의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
천황 권위에 대한 회귀,
무사 정체성의 재정의였다.
조슈가 무장을 시작했고,
도사는 중재를 시도했으며,
사쓰마는 조용히 다음 권력을 준비했다.
검은 아직 검집에 있지만,
그 칼끝은 이미 막부를 향하고 있었다.
⏳ 다음 편 예고
📘ep.4 – 신선조의 출현: 막부의 마지막 방패
반幕 세력이 사상을 무장하던 그 시기,
막부는 ‘질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칼을 뽑는다 – 신선조.
지위도 계급도 없었지만, 검술과 충성만으로 교토를 수호했던 그들의 등장은
막부의 마지막 저항이자, 피로 쓰여진 질서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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