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을 잃은 사회에서,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
언제부터였을까.
나에게 비정상이 일상이 된 채 살아온 날들이 너무도 길다.
그리고 오늘, 6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일인 이 날.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를 양비론자라 하고,
누군가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찾지 못했다. 내 기준과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을.
며칠 전, 우연히 과거 대선 토론을 다시 봤다.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2002년 토론.
- 노무현은 행정수도 이전을 통해 서울 집중의 해소와 교통문제 해결하며, 지역 균형 발전을 말했고,
- 이회창은 그 비용을 차라리 교육에 투자하며, 교통은 교통 문제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놀라웠다.
20년 전의 그 토론이,
지금 우리 정치보다 훨씬 정상적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노무현의 수도 분산은 그 나름의 국가 전략이었고,
이회창의 교통 해법 역시 현실적 고민이었다. 지금의 세종시와 대전의 교통문제를 보라...
두 사람의 견해는 달랐지만, 공통된 지향은 국가의 미래였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정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찢는 흉기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정치의 언어는 ‘대화’가 아니라
‘공격’과 ‘탄핵’만 반복한다.
- 누구는 계엄령을 이야기하고
- 누구는 사법리스크로부터 벗어나질 못한다
- 누구는 그 틈에서 혐오와 증오를 키운다
내가 원하는 건 아주 단순하다.
나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
이제 좀 서로를 죽이려 들지 않았으면 한다.
정치가 쇼가 아니라, 대화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나는 지난 10년 넘게
정상적인 국회를 본 적이 없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정부도 보지 못했다.
서로를 향한 비난, 끊이지 않는 갈등,
정치는 더 이상 삶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분열시킨다.
어느 순간,
이 나라는 갈등의 나라가 되었다.
지역, 성별, 세대, 가치관, 모든 게 나뉘고 찢겼다.
내가 20살이던 시절,
전라도·경상도 갈등은 그저 어른들 이야기였다.
이제는 젊은 세대까지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한다.
우리는 이제 정상이 비정상처럼 취급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아야 한다며
그 선택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제는 존중과 공감, 이해라는 말조차 사치처럼 들린다.
오늘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단지, 이 나라가
조금만 더 건강했으면 좋겠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이제는 갈등을 줄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정치가 시작되길 바란다.
민주주의란 결국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하는 질서’니까.
📌 이 글은 대통령 선거일인 6월 3일,
누구를 지지하지 않은 한 시민이
이 시대를 살아가며 느낀
작은 바람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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