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s are weapons. Thoughts are shields.

“질문은 무기가 되고, 생각은 방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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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전쟁을 걸었다 ep.8 – 클라라 바튼

총 대신 수첩을 든 구조자 전장에선 총이 울렸지만, 그녀는 붕대와 수첩을 들었다.이름을 지운 전쟁에서, 그녀는 그 이름들을 기록했다.1. 그녀는 총 대신 손을 들었다남북전쟁이 시작되던 1861년.클라라 바튼은 전쟁에 참전한 병사도, 군인 가족도 아니었다.그녀는 워싱턴 D.C.에서 특허청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년의 여성에 불과했다.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그녀는 **“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간호하겠다”**고 선언했다.붕대, 약품, 침낭, 음식, 전등, 그리고 종이와 펜을 손에 들고직접 전장으로 들어갔다.그녀의 간호는 단지 붕대를 감는 일이 아니었다.죽어가는 병사의 이름을 기록하고,그들이 남긴 유언을 적어 유족에게 전해주는 일이기도 했다.2. 야전의 구조자 – 그녀가 남긴 것들전투가 치열했던 버지니아, 앤..

동로마사 ep.1 – 제2의 로마의 탄생 콘스탄티누스에서 유스티니아누스까지

로마 제국의 수도가 동방으로 옮겨진 순간, 하나의 세계는 서서히 양분되기 시작했다.콘스탄티누스와 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의 생명을 연장했지만, 그들이 세운 제2의 로마는 더 이상 같은 제국이 아니었다.1. ‘하나의 로마가 둘로 나뉘다’ – 서로마의 끝, 동로마의 시작476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면서 세계는 ‘로마 없는 서방’과 ‘로마를 자처하는 동방’으로 갈라졌다.하지만 사실상 이 균열은 훨씬 이전,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306~337) 시기부터 시작되었다.AD 330년, 그는 전략적이고 행정적 이유로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콘스탄티노폴리스, 제2의 로마".이 선언은 단순한 수도 이전이 아니라, 로마 제국 정체성의 동방 이동을 의미했다.2. ..

[외전] 하얀 복면의 탄생 – 쿠 클럭스 클랜, 또 하나의 전쟁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미국 남부에는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그것은 총이 아닌 복면과 횃불로 진행된, 기억되지 않은 전쟁이었다.1. 전쟁은 끝났지만, 분노는 남았다1865년, 남북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종결되었다.연방은 보존되었고, 노예제는 폐지되었으며, 미국은 겉보기에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그러나 남부 사회의 기반은 철저히 무너졌다.경제는 파탄났고, 정치권력은 상실되었으며,무엇보다 백인 지배층은 자신들의 사회 질서가 무너졌다는 인식 속에서 격렬한 혼란을 겪었다.그 혼란은 곧 분노와 복수심으로 치환되었고,그 분노는 조직화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2. 테네시에서의 시작 – KKK의 탄생같은 해, 테네시주 풀라스키.남부 출신의 전직 남부군 장교 6명이 모여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었다.그 이름은 ..

황제의 시대, 로마 ep.10 마지막 로마인, 마지막 제국

"제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았다." AD 337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죽었다.그는 기독교를 공인했고, 새로운 수도를 열었으며, 로마를 다시 세웠다.그러나 제국은 세 아들에게 나뉘었고, 다시 내전이 벌어졌다.한 번 쪼개진 권력은 쉽게 하나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뉘어지게 된 동로마와 서로마...동로마와 서로마는 이제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동로마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체제를 다듬었고,서로마는 라벤나와 밀라노 등지를 전전하며 점점 작아졌다.⚔️ 서로마의 마지막 불꽃 – 무너지는 중심AD 410년,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Alaric)**가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그날, '영원한 도시'라 불렸던 로마는 약탈당했고,시민들은 수백 년 만에 침략자 앞에 무릎 꿇는 황제국의 몰락을 목..

황제의 시대, 로마 ep.9 콘스탄티누스 – 기독교와 제국, 두 얼굴의 유산

“기독교는 핍박에서 시작됐고, 황제의 왕좌 옆에 앉으며 바뀌었다.”⚔️ 혼란의 시대, 새로운 황제의 부상디오클레티아누스가 떠난 후, 사두정치는 곧 붕괴되었다.황제의 자리를 둘러싸고 다시 전쟁이 벌어졌고,서방 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의 아들,**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누스(Flavius Valerius Constantinus)**는AD 306년 브리타니아에서 군단의 지지를 받아 황제로 선포된다.그러나 제국엔 이미 여러 명의 황제가 존재하고 있었다.또 다시 내전, 또다시 권력 투쟁의 시대였다.⚔️ 티베르 강 위의 결단 – 밀비우스 다리 전투 (AD 312)로마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투, 바로 밀비우스 다리 전투(Battle of the Milvian Bridge).콘스탄티누스는 로마로 진군하며, 경쟁자..

한국전쟁 유해 발굴 – 되찾은 이름들, 끝나지 않은 국가의 책임

정전은 이루어졌지만, 이름은 돌아오지 않았다.한국전쟁 유해 발굴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1. 전쟁은 끝났지만, 이름은 남지 않았다1953년, 총성은 멎었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수많은 병사들이 전선에서 실종되었고,그들의 이름은 명부에 없었고, 무덤도 남지 않았다.전쟁의 공식 기록 속에서조차 잊혀진 이들은국가와 사회의 기억에서도 빠져나갔다.전사자 유해는 국가가 회피해온 마지막 책임이었다.그들이 다시 기록될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했던 시절이 있었다.2. 유해 발굴 사업의 전개 – 기억은 행정이 아니라 책임이다2000년, 대한민국은 유해 발굴에 나섰다.강원도 백석산에서 첫 삽이 들어갔고,2007년에는 국방부 직속 **‘유해발굴감식단(MND KIA)’**이 창설됐다.이후에는 DNA 분석과 AI 기반 병적 기록 대..

황제의 시대, 로마 Ep.8 디오클레티아누스 – 마지막 질서,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문턱

“제국은 더 이상 혼자 다스릴 수 없다.”– 디오클레티아누스 ⚔ 끝나지 않던 혼란, 그리고 한 장교의 등장3세기 중엽, 로마 제국은 사방에서 침입당하고 안에서는 분열되며, 황제는 군단이 세우고 군단이 죽이는 존재로 전락했다.📉 20명의 황제가 50년 동안 교체 – 대부분 암살 또는 쿠데타📉 게르만족, 사산조 페르시아, 내란, 경제 붕괴📉 동방에서는 팔미라, 서방에서는 갈리아 제국이 등장📉 도시는 약탈당하고 화폐는 휴지조각으로 변함그런 무질서의 정점이던 AD 284년,한 군단 사령관이 군대의 지지를 받아 황제로 즉위한다.그가 바로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다.👑 디오클레티아누스 – 평민 출신, 질서를 ..

전쟁이 성격을 바꿨다 – MBTI와 제2차 세계대전

심리검사 MBTI는 단순한 성격 놀이가 아니다. 그 발전에는 전쟁이 있었다.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모든 국민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필요에 따라, 성격유형 지표를 실전 도구로 활용했다. 그 과정은 심리학이 처음으로 사회 전반에 침투한 순간이었다.🔹 MBTI, 전쟁 이전의 작은 실험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성격유형 지표인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처음부터 과학적 테스트로 개발된 것은 아니었다.그 시작은 칼 융(Carl Gustav Jung) 이 1921년 발표한 『심리 유형(Psychological Types)』이라는 책이었다.융은 인간을 외향성과 내향성,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려 했고, 그 이론에 깊이 공감한 미국의..

전쟁과 음식 ep.8 맥도날드의 소련 진출 – 햄버거가 철의 장막을 뚫다

1990년, 냉전의 한 순간 맥도날드는 모스크바 한복판에 첫 매장을 열었다. 전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패스트푸드 제국의 본진이 공산주의 소련의 심장부에 들어선 그 날은, 전쟁 없이도 세상을 바꾼 순간이었다.🛠 붕괴 직전의 제국, 그리고 의외의 진출자1980년대 말, 소련은 이미 균열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개혁과 개방을 의미했지만, 경제는 침체되었고 국민의 불만은 커져갔다.이 혼돈 속에서 미국의 대표 자본주의 기업이자 패스트푸드 제국의 상징, **맥도날드(McDonald's)**가 등장했다. 14년간의 협상과 준비 끝에, 맥도날드는 1990년 1월 31일 모스크바 푸쉬킨 광장에 첫 매장을 열었다. 당시 언론은 이를 이렇게 묘사했다.“It’s a Big ..

보이지 않는 방패 – 한국국방과학연구소, 그 조용한 전쟁

한국 방위산업의 중심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연구소’가 있었다.한국국방과학연구소(ADD)는 단순한 무기 개발기관이 아닌, 자주국방을 위한 국가적 신념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걸어온 조용한 전쟁의 기록을 되짚어본다.1. 전쟁은 눈앞에서, 과학은 그보다 먼저불곰사업, 방산기업 한화의 급부상, K-방산 수출 호황까지.이 모든 방위산업의 흐름 한가운데엔 늘 ‘조용한 주체’,즉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있었다.우리가 미사일을 만들고, 전차를 수출하고, 하늘을 지키는 방공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은 단지 기업의 성과만이 아니다.그 기반이 되는 선행기술, 연구, 실험, 실패와 검증의 반복이 있었고,그걸 가능케 한 조직이 바로 ADD였다.2. 자주국방의 기초를 세운 사람들ADD는 1970년 8월, 박정희 정부..

칼럼 · 에세이 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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