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시골 마을 게티즈버그(Gettysburg)는
역사의 중심이 된다.
남북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3일, 그리고 전쟁의 흐름을 바꾼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 리 장군의 도박 – 명장의 도전과 전략의 한계
남부의 로버트 E. 리(Robert E. Lee) 장군은 당시 남부에서 거의 신화적 존재였다.
수많은 전장에서 연전연승을 기록하며, "신은 남부에 리를 주었고, 북부에 링컨을 주었다" 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침공은 달랐다.
리의 명성은 여전히 높았지만,
그의 가장 유능한 부하였던 스톤월 잭슨(Thomas J. "Stonewall" Jackson) 이
이전 전투에서 아군 오인 사격으로 전사하면서,
남부군은 결정적 기동성과 추진력을 잃은 상태였다.
리 장군은 잭슨 없이도 북부를 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북부 지역을 침공해 전쟁을 끝내려는 도박에 나선다.
🧭 왜 하필 게티즈버그였을까? – 우연이 만든 격전지
게티즈버그는 전략적 요충지라기보다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7개의 주요 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하여, 양군 모두 자연스럽게 병력이 모일 수 있었다.
1863년 7월 1일 아침,
- 남부군 선발대 A.P. 힐 사단
- 북부군 선발대 존 버포드(J. Buford) 기병대
가 게티즈버그 북서쪽에서 조우한다.
이 작은 충돌은 곧 대규모 교전으로 번진다.
본대가 뒤따라오며, 게티즈버그는 우연히 남북전쟁 최대 전투의 무대가 되었다.
📅 1일차 – 북부의 퇴각, 그러나 시간을 벌다
- 오전, 북부 버포드 기병대는 고지대를 점령하고 남부군을 견제한다.
- 정오 무렵, 북부 보병대(레이놀즈 사단)가 도착해 교전을 이어가지만,
남부군(힐, 이어서 얼리 사단)의 병력 집중에 밀려 후퇴하게 된다.
▶ 북부군은 시가지를 포기하고,
게티즈버그 남쪽 Cemetery Hill 고지로 철수하여 방어선을 구축한다.
⚔️ 1일차 핵심
- 북부는 전투에서 밀렸지만,
- 버포드-레이놀즈가 시간을 끌어 고지대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 북부군이 방어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덕분이다.
📅 2일차 – 측면을 노린 남부군, 메인 제20연대의 결사 방어
- 북부군(미드 지휘)은 고지대를 따라 긴 방어선을 구축한다.
(Cemetery Ridge ~ Little Round Top) - 리는 좌우 양측을 동시 공격해 북부 방어선을 무너뜨리려 한다.
▶ 남부 좌측 공격 – 리틀 라운드 탑 전투
- 롱스트리트 사단이 리틀 라운드 탑을 공격한다.
- 북부는 공병참모 워렌이 고지의 전략적 가치를 간파해 사수 준비를 완료한다.
- 메인 제20연대(20th Maine Regiment) 가 좌측 끝자락을 방어한다.
- 조슈아 체임벌린 중령이 지휘하는 메인 제20연대는
수적 열세와 탄약 부족 속에서도 방어를 이어간다. - 최후에는 고정창 돌격(Fixed Bayonets) 을 명령하여,
남부군을 밀어내고 포로를 잡는다.
❝탄약이 없으면 총검으로 싸운다.❞ – 조슈아 체임벌린
▶ 남부 우측 공격 – Cemetery Hill
- 얼리 사단이 북부 우측을 공격하지만 실패한다.
⚔️ 2일차 핵심
- 남부는 좌우 공격 모두 실패했고,
- 메인 제20연대와 워렌의 선제적 대응 덕분에 북부는 방어선을 완성한다.
📅 3일차 – 피켓의 돌격, 남부의 절망
7월 3일, 리 장군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조지 피켓(George Pickett) 의 사단을 포함한 약 1만 2천 병력이
북부 방어선 중앙을 정면 돌격한다.
▶ 돌격 경과
- 남부 포병대는 사전 포격을 가했지만, 북부 방어선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 약 1.5km 개활지를 가로질러 돌격하는 동안,
남부군은 포격과 소총 사격에 노출되어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 남부군의 절박함
- 리와 장교들은 공격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 병력과 물자가 급속도로 소모되는 상황에서
한 번의 승부수를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돌격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천천히 죽는다.❞
결과는 처참했다.
피켓 사단은 50% 이상 전멸, 돌격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 결과 – 북부는 살아났고, 남부는 꺾였다
게티즈버그 전투는 북부의 전략적 승리였다.
남부군은 약 2만 3천 명, 북부군도 약 2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었지만,
공세를 꺾은 쪽은 북부였다.
리 장군은 철군을 결심했고,
이후 다시는 북부를 침공하지 못했다.
🕊 게티즈버그, 그리고 링컨의 연설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난 지 몇 달 후,
1863년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은 전투지 인근에 마련된 국립묘지 헌정식에 참석하여
짧지만 심오한 연설을 남긴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정부의 존재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이 연설은 남북전쟁의 의미를 단순한 영토 문제를 넘어,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 이상을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재정의했다.
짧은 몇 분간의 연설이었지만,
이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선언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위대한 연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 마무리 – 전환점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게티즈버그 전투는 단순한 전술적 승부가 아니었다.
우연히 시작된 조우전,
지형과 병참을 둘러싼 사투,
지휘관들의 선택과 부재,
그리고 병사들의 절망적인 돌격이 빚어낸 복합적 결과였다.
이제 남북전쟁은 분명히 달라졌다.
북부는 점차 전국적 총공세 체제로 돌입하고,
남부는 지킬 수 없는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지쳐가기 시작했다.
👉 다음 글에서는,
또 하나의 피의 전장,
셔먼의 바다로의 행군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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