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야마토의 최후 – 비장의 전함, 침묵 속에 가라앉다
📘 요약
일본 제국 해군이 은밀히 건조한 전함 야마토는, 단 한 번의 전장다운 활약 없이 침몰하며 거함거포 시대의 종언을 상징했다.
⚓️ 1. 야마토, 바다 위의 전설이 된 전함
**야마토(大和)**는 1940년 진수된 일본 해군의 초대형 전함으로,
배수량 약 7만 톤, 세계 최대 크기의 46cm 3연장 주포를 장착해 압도적 화력을 자랑했습니다.
이는 미국 전함의 16인치 포를 능가하는 성능으로, **‘최강의 전함’**을 꿈꾸며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함은 단순한 군함이 아니었습니다.
군사, 정치, 심리의 총체적 상징이자,
훗날 **“패배를 예견한 제국의 허상”**으로 남게 됩니다.

📜 2. 조약을 무시한 야망 – ‘야마토’는 왜 만들어졌는가?
▪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1922)
미국:영국:일본 = 5:5:3의 비율로 전함 보유 톤수를 제한
→ 일본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비율에 불만을 품음
▪ 런던 해군조약 (1930, 1936)
전함 건조를 더욱 엄격히 제한
→ 1936년, 일본은 자발적으로 조약을 탈퇴
→ 결과적으로 전함 건조의 자유는 얻었지만 국제적 고립을 자초
▪ ‘양에서는 질로’ 전략과 은폐
일본 해군은 이를 계기로 초대형 전함 ‘야마토급’ 시리즈의 건조를 비밀리에 착수합니다.
- 야마토 한 척에 국가 예산의 6% 이상이 투입
- 국회에도 배수량과 무장 정보를 은폐
- 명백한 군축 조약 위반이자 분식회계성 프로젝트
⚔️ 3. 전함 시대의 종언 – 항공모함에 밀린 야마토
▪ 진주만 공습 이후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한때 전함의 중요성이 재조명되었지만,
▪ 미드웨이 해전(1942)
일본 항공모함 4척 격침 → 제공권 상실 → 항공기 중심 전쟁 시대로 전환
야마토는 이 시기 실전 배치되었음에도 후방에 숨겨졌으며,
항모 중심의 제공권 시대에는 기동성과 공중 대응력이 없는 거함거포 전함은 도태된 무기체계가 되었습니다.
- 실제 야마토는 전선에서 직접 교전한 전과가 거의 없었고,
- 리벳 연결 중심의 장갑 구조는 항공기의 정밀 폭격에 취약했습니다.
※ 흥미롭게도, 야마토는 동형 전함 ‘나가토’보다도 오래 실전 배치되었으며,
그 이유 중 하나는 당시 함장이었던 ‘아리가 마모루’ 제독의 기동 능력이었습니다.
그는 **‘기동의 달인’**이라 불릴 만큼, 야마토를 놀랍도록 정밀하게 운용할 수 있었던 인물입니다.
🌊 4. 오키나와 작전 – 야마토의 최후
▪ 1945년 4월 6일, 텐이치고 작전(天一号作戦)
- 야마토는 자살 특공 작전으로 오키나와 해역으로 출격
- 편도 연료만 지급 → 돌아올 수 없음
- 항공기 엄호 없이 단독 출격 → 미군 항모기의 완전한 표적
▪ 침몰 – 단 2시간 반 만에
- 미 해군 함재기 300여 대가 집중 공격
- 수차례의 폭탄과 어뢰 피격 후, 대폭발을 일으키며 침몰
- 승조원 약 3,000명 중 3/4 이상 사망
이 출격은 전술적 판단보다는 ‘정신력’과 ‘희생’을 앞세운 정치적 쇼에 가까웠으며,
야마토는 전략 자산이 아닌, 상징물로써 최후를 맞았습니다.
🇯🇵 5. 야마토 신화 – 기술력인가, 시대착오인가
▪ 전후 일본 내 평가
야마토는 단순한 군함이 아닌,
- “혼을 담은 기술력”
- “일본의 자존심”
- “무사도 정신”
으로 신화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실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조약을 무시한 군국주의 자존심 프로젝트
❌ 항공력의 시대를 거부한 전략 실패
❌ 국민에게 감춰진 세금 낭비의 결정체
야마토는 과거를 이상화하고 현실을 부정한 **‘대국의 허상’**이었습니다.
📉 6. 평론 – “침몰한 것은 단지 야마토만이 아니었다”
야마토는 건조 당시부터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무기였습니다.
- 기술력은 세계 최고였지만, 전략적 가치가 없었고
- 출격은 있었지만 실질적 전과도 없었으며
- 결국 싸울 수 없는 시대 구조 속에서 가라앉은 전함이었습니다.
🧭 마무리 – ‘전설’은 왜 필요했는가?
야마토의 최후는 단지 한 척의 침몰이 아닌,
일본 제국이 직면한 현실 도피와 과잉 자존심의 전형적인 비극입니다.
- 국민에게 은폐된 전함
- 숨겨진 국가 예산
- 돌아올 수 없는 자살 특공
야마토는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떠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