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이』 – 나는 왜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는가
✍️ 요약:
『바람의 아이』는 고구려가 멸망한 뒤, 발해가 건국되기까지의 틈 사이—그 혼란 속에서 살아남은 소년들의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단순히 청소년기 추천받아 읽었지만, 책을 덮을 즈음엔 교과서가 말해주지 않던 역사적 진실을 다시 묻게 되었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응답이자, 이 책을 오늘 다시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한 기록이다.
📖 『바람의 아이』가 말한 것, 그리고 말하지 못한 것
『바람의 아이』는 슬이, 미루, 퉁개라는 소년들이 혼란의 시기를 살아가며 무예와 의술을 익히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꿈을 품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단순히 소년 영웅담으로 읽지 않았다.
이 책은 곳곳에 예맥, 흑수말갈이라는 이름을 배치한다.
이는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뿌리이자 방향이었다.
이 책은 말한다.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이 세운 나라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이 책 속의 소년들이 말갈 출신이라는 설정은 단지 다양성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역사적 실체를 반영한 중요한 지점이다.
🌬️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순간
처음 이 책을 읽은 건, 그냥 “괜찮다더라”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저 무거운 역사가 아니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역사 소설이라고.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 고구려가 부흥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 왜 발해는 ‘고구려의 부활’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라고 느껴졌을까?
- 말갈이라는 단어는 왜 주체로 등장했을까?
나는 교과서에서 **“부흥운동은 실패하고, 발해가 세워졌다”**는 한 줄 설명을 읽었지만,
이 책은 그 빈칸을 나에게 채우게 만들었다.

🧭 역사적 관점으로 본 발해 – 이 책이 암시한 진짜 이야기들
1. 말갈족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중심은 아니었다
책은 흑수말갈이라는 명칭을 명확히 사용하며,
말갈의 존재를 이야기의 중심에 끌어온다.
(대조영이라는 사극을 보았다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그간 말갈에 대해 우리와 같은 단일한 부족으로 다루고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말갈은 단일 부족이 아닌 다양한 계열로 구성된 복합 민족이었고,
발해에서의 역할 또한 균질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발해의 주도권은 명확히 예맥계 고구려 유민이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말갈은 국가 운영에 동참했고 군사적 역할도 컸지만,
정치의 중심과 왕실 혈통, 문화적 계승 등은 예맥계가 주도했다.
즉, 『바람의 아이』에서 말갈 출신 소년이 비중 있게 그려졌지만,
그 이야기는 **‘공존의 상징’**일 뿐, 역사적 권력 중심은 아니었다.
2. 고구려 부흥운동의 실제
고구려 멸망 후 부흥운동은 있었지만,
그 중심지는 한성 인근이었고 신라의 협조 하에 진행되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는 고구려라는 이름을 유지하기엔 지리적·정치적 한계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주 북부와 연해주 지역은 달랐다.
그곳엔 새로운 가능성과 여백이 있었다.
3. 발해는 고구려의 귀환이 아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이 중심이 되었지만,
그 국가 운영에는 당나라의 제도와 관제를 부분 수용했다.
문물 교류, 외교, 관복 제도, 과거 시험 등
당 문명의 흡수와 자율적 해석을 동시에 수행한 국가였다.
즉, 발해는 고구려의 '복사판'이 아닌,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신생 국가였다.
4. 연해주라는 땅, 발해의 결정적 차별성
고구려의 중심은 평양, 만주 남부였다.
그러나 발해는 그보다 북쪽으로, 연해주 동부까지 실질 지배했다.
지금의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 일대는
고구려조차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던 지역이다.
📌 그러니 발해는 고구려로의 귀환이 아니라, 고구려가 도달하지 못했던 미래였다.
이건 단지 영토의 차이가 아니라,
정체성과 방향의 전환이다.
5. 발해의 멸망 – 내부 균열이라는 또 다른 진실
요나라(거란)에게 멸망당한 발해의 말년,
우리는 단순한 외세의 침략만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발해 내부에선 민족 간 갈등,
즉 예맥계 중심 권력과 말갈계 세력 간의 균열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고구려의 후예들이 중심이었지만,
말갈계의 성장과 세력 확장은 정치적 긴장을 만들었고,
그것이 발해가 흔들리게 된 내적 원인이었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바람의 아이』는 그 균열이 생기기 전,
서로 다른 출신의 소년들이 ‘형제’로 엮이는 가능성의 시기를 그려낸다.
그게 이 책의 문학적 가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후의 역사까지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 『바람의 아이』는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
나는 이 책을 통해 말갈이라는 이름을 처음 '주체'로 만났다.
고구려의 후예라는 말에 담긴 무게를 다시 생각했고,
'발해는 단지 계승이 아니라 창조다'라는 문장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바람의 아이』는 내가 처음으로
'역사'를 기억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으로 받아들인 책이었다.
🙋 이런 사람에게 이 책은 반드시 의미가 있다
- 교과서 밖의 역사, ‘사람의 역사’를 알고 싶은 독자
- 발해를 고구려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국가로 바라보고 싶은 이들
- ‘말갈’을 단순 명사에서 주체로 해석해보고 싶은 사람
- 청소년 역사 소설을 통해도 역사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걸 체험하고 싶은 독자
『바람의 아이』는 단지 소년들의 성장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읽고 나면 당신 안에서 한 시대의 질문이 자란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